Jan 22, 2011

고향무정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어부들 노랫소리 멎은지 오래일세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수줍어하시는 모습, 책을 읽으실때마다 꺼내시던 돋보기,
이웃에 손주라도 태어나면 좋은 이름 지어주시고 받으시던 고구마 한소쿠리.
그리고 이번에 더해진 '고향무정'의 가삿말.

지난 주말 광주에 다녀왔다.
사촌의 결혼식과 할머니 문안 차 내려간 것.
할머니는 10년쯤 치매를 앓고 계시고 그사이 다리마저 성치 않게 되셨다.
치매에 걸리셨다해도 점잖고 맑으셨던 젊은시절의 성품은 변함 없으신 듯 하다.
다만 아기가 되어버리신 것 뿐.
이번에 여러 친적들이 모이니 기분이 좋으셨던지 많이 웃으시고 제법 흥에겨운 티를 내셨다.
가끔 보여주시던 율동을 하시던데, 율동이라해도 동작이 크지 않고 팔을 뻗어 손바닥을 보였다가 다시 접어 손등을 보였다를 반복하는 것이 전부이다. 모양새가 아무래도 일본식 춤 인 듯 하다.
할머니가 흥이 나시니 곁에 있던 고모들이 엄마 애창곡이라하며 흥얼 흥얼 '고향무정'을 부르더라.
할머니, (여전히 율동을 하시는 채로)기억나지 않는 가사를 더듬 더듬 입모양 맞추어 보시는데 그 모습이 소녀같이 어여뻤다.

내향적이셨던 할머니 성향과는 달리 할아버지께서는 악기도 다루시고 노래를 좋아하시며 외향적인 분이셨다. 울 아버지 어릴적에 근처에 살던 아버지의 사촌과 친구들이 노래시키는 것이 무서워 집에 놀러오지를 못했다니 알 만 하겠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에게 가르치곤 두분이 함께 부르시던 것이 바로 '고향무정'이라.
가만히 가사를 들어보는데, 있지도 않은 벚꽃이 눈앞에 휘날린다.
본적도 없는 할머니의 인생이 스치운다.

본래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사신 할머니의 인생.
좋아하시는 튀김을 쥐어드리니 '내가 3살이라 이리 딱딱한건 먹기 어려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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