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1, 2011

<하이킥 시리즈>의 김병욱 감독의 힘은 자연스럽지만 무시할 순 없는 아우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트콤이라기엔 메세지와 목적이 분명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유머가 극 전반에 깔려있다할까. 그리고 정서적 결핍을 사유해 본 사람 특유의 통찰과 성숙의 결이 그 저면에 있다. (심지어 그 결 조차 관조적으로 풀어내며 극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보편적 어리석음으로 가 닿는다!)

나는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어떤부분은 상당히 과잉되어있고,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절제되어있는 채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문득 문득 관찰자적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았을때 그러한 감정의 변위가 퍽 부끄럽곤하는데, 김병욱 감독의 작품들을 시청할때면 김병욱 감독도 그런 순간을 자주 겪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과장, 과잉을 예민하게 견제하는 듯 하다가도 때론 (요즘같은 세상에 촌스럽다 여겨지는) '감정을 드러냄'에 거침없기도 하니까.

올 가을 <하이킥3>가 기대된다.
감독 스스로 이번편은 영화 '언 에듀케이션'의 약간의 영향을 받았다 밝혔다는데,
<사람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를 늘 염두해 두는 듯 한 김병욱 표 캐릭터들의 성장에 적극 이입하며 나는 아마 몇개월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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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김병욱 감독 예전 인터뷰 발췌
2007년 인터뷰 중 (헤세에 지배되어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부분 등)공감가던 부분들을 적어두었던 것.

-학교에 가면 오직 집에 빨리 가고만 싶었어요.
대학 가서도 수업 뒤 친구들과 모여 놀기라도 하면 안정이 안 됐어요.
내게 ‘삶’은 집에 와서 혼자 있는 거니까 그런 자리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기 위해 부득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여겼어요. (웃음)
세상에는 제도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사회에서 빤하게 파놓은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을 가긴 싫은데 또 이걸 이탈하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짓눌렸어요.
어린 시절 어쩌다 늦잠 자고 지각 등교할 때 다른 아이들이 가고 없는 길을 혼자 뛰어가며 보았던 휑한 거리 풍경이 선명한 공포로 남아 있어요.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보면 주인공 한스가 제도권의 길을 가다가 중도에 포기하잖아요.
나중에 그 길을 포기했다는 사실 때문에 연애도 실패하고, 자살까지 내몰리는 모습을 열중해서 읽었어요.

-어려서 상상을 통제하지 못해서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런 공포가 <월하의 공동묘지>로 증폭돼서 무척 괴로웠죠.
집의 구조가 좀 무서웠어요. 마당에 우물도 있고 뒤란도 있고.
불만 끄고 누우면 마음은 겁에 질려 있는데 몸이 자꾸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곳으로 가고 마는 거예요. 유년 시절 그 공포감 때문에 많은 일을 못하고 거의 4, 5년을 허송했죠. (좌중 폭소) 그 시간을 다른 데 썼으면 좀더 나은 사람이 됐을 텐데.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어린 마음에도 내가 이렇게 자라서 정상적 인간이 되겠나 걱정됐어요.
그러다 중학교 진학 뒤 헤세에 빠져 공포에서 급(急)염세로 전환했죠.
일단 공포는 없어지니 그런대로 좋더라고요.

-회고 취향은 제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심할 때는 한참 연애하는 중에도 미래를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추억으로 남으려나” 하고요.
즐겁게 놀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슬프겠구나 생각하고요.
그처럼 삶에 잘 젖어들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도 있고요.

-소박하게 살고 소박한 것을 만들면서 풀어요.
어둠 속에서 화살을 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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